김연아가 생애 마지막 경기가 될 소치 올림픽에서 본인의 최고 점수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이상화는 이미 수 차례 본인이 세운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2013년 1월 2012-13시즌 월드컵 6차대회에서 36초80으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한 이상화는 2013-14시즌 월드컵 1차대회 2차 레이스에서 36초74, 2차대회 1‧2차 레이스에서 각각 36초57, 36초 36로 4차례 연속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특히나 여자선수로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졌던 36초 50의 벽을 깬 것은 김연아가 여자 싱글 최초로 종합점수 200점대를 넘은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위업이다.

 

올림픽 후 슬럼프를 극복한 이상화의 비결

밴쿠버 올림픽 이후 김연아가 목표 달성 후 오는 허탈감을 겪으며 방황한 것 못지 않게 이상화도 슬럼프에 빠져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발목 부상에 시달리며 잠시 부진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은 슬럼프 마음속의 꾀병일 뿐 실제로는 없었다며 이겨내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연습했다고 한다. 그러자 조금씩 좋아지는 게 보였고 그 아주 미세한 발전을 격려 삼아 달렸다.

이런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현역 시절 남자 5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두 차례나 경신하고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으며 중국 단거리의 간판 왕베이싱을 키워낸 캐나다의 케빈 오벌랜드 코치였다.

2012년 8월 대한민국 코치로 부임한 오벌랜드 코치는 이상화의 스타트를 집중적으로 다듬으며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의 헌신적인 지도에 힘입어 이상화는 스타트 후 100m의 기록을 경이적으로 단축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때의 100m 기록 10초 29에 비해 36초 36의 세계 신기록을 세운 2013년 11월 17일엔 10초 09의 기록을 세워 무려 0.2초나 100m 기록을 앞당겼다. 일상생활에서야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0.01초 차이로 우열이 갈리는 기록 경기의 세계에서 0.2초는 엄청나게 큰 차이이다. 더군다나 기존의 이상화는 스타트가 약하고 막판 스퍼트가 강한 선수였는데 이제 스타트까지 보강하고 1,000m 훈련도 병행하여 마지막 구간을 돌 수 있는 원동력까지 만들었으니 500m에서 무적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밴쿠버 때에 비해 이상화의 기록은 1.49초나 단축됐다. 그야말로 전혀 다른 선수가 된 셈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이상화는 먼저 오벌랜드 코치에게 다가가 "난 더 잘하고 싶다. 당신이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첫만남부터 이상화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싹텄고 오벌랜드의 조언을 대폭 수용한 이상화는 보다 완벽한 스프린터로 거듭 났다. 체중을 5kg 가까이 감량했지만 근육량은 더 늘어나서 허벅지는 3cm 정도 굵어졌다. 몸이 가벼워진 대신 더 단단해지고 강해진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몸으로 이상화는 연거푸 세계 신기록을 세워 왔고 이제 올림픽 2연패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상화의 경쟁상대는 남자선수들?

김연아가 다른 여자 피겨선수들과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만큼의 차이를 보이는 만큼 이상화도 다른 여자 선수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상화 자신이 남자 선수들과 훈련을 함께하면서 남자선수들만큼 빨리 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는 것이 커다란 효과를 내고 있는 비결 중 하나이다.

올림픽 3연패를 꿈꾼다

이런 사실만 놓고 보면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는 기정사실처럼 다가오지만 피겨 여자 싱글만큼이나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우승도 녹록하지 않다. 90년의 동계 올림픽 역사상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2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보니 블레어(미국)와 카트리나 르메이돈(캐나다), 두 선수뿐이다. 이상화가 소치 올림픽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우승한다면 두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게다가 1989년생인 이상화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에도 만 29세일 뿐이어서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할 수도 있다. 전인미답의 올림픽 3연패의 위업이지만 지금의 이상화라면 절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천상 여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만 보면 이상화는 매우 카리스마 넘치는 원더우먼 같은 선수로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생활해 온 죽마고우인 모태범은 이상화에 대해 "겉보기엔 털털해 보이지만 천상 여자에요. 마음도 여리고, 눈물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레고를 조립하고 네일 아트를 하는 이상화.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그녀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대한민국 동계스포츠의 두 여제로서 올림픽 금메달이 확실시되는 이상화지만 본인은 또 다른 도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또 다른 한 사람. 그는 바로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팀의 최고참 조해리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도 아침 식사를 함께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줬던 조해리, 덕분에 이상화는 긴장감을 풀고 편안하게 경기에 임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우애가 4년이 지난 소치에서도 지속되면서 두 사람은 경기 당일 함께 아침 식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이상화는 2연패를 당연시하는 수많은 시선을 뒤로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올림픽 정상 도전에 나선다. 속도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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